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8년 촛불집회 (문단 편집) ==== 반정부 여론과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율 하락 ==== ||<#ffffff,#1f2023> [[파일:2018050349032174.jpg|width=330]] || ||<#ffffff,#1f2023> [[이명박근혜 심판 범국민행동본부|안티MB]]가 주최한 촛불 문화제의 장면. 즉, '''시위가 시작된 5월 2일에 나온 장면이다.''' [[http://www.amn.kr/sub_read.html?uid=31234|#]] || ||<#ffffff,#1f2023> [[파일:5172627031.jpg|width=330]] || ||<#ffffff,#1f2023> 다음 아고라에 시작된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 4월 6일에 시작되어 '''130만명'''이 서명했다. 서명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고등학생이였으며 아고라 아이디 '안단테'를 사용하였다.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2634|#]] || [[이명박]] 탄핵 시위가 논란이 되었다. 시위 주최 측은 후일 2008년 촛불집회의 목적이 '강대국의 경제적 횡포와 검역주권 침해, 그리고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굴욕적 자세'에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는 시위주권을 위해 시위를 벌였는데 (정부의 불통과 강압시위 때문에) 탄핵을 외쳤다'는 논지다. '[[이명박근혜 심판 범국민행동본부|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안티MB)[* 현 [[서울의소리]] 카페.]도 참여했다. 광우병 논란은 가장 시국에 가까운 명분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즉, 4대강이나 의료민영화 등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 때문에 딱히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야권 시민들의 반감은 시위 전부터 컸다는 의미다. 단지 미국소를 명분으로 반정부 세력들이 이들을 규합했고 매스컴의 오보와 주변의 미지의 병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심까지 합쳐서 이른바 '탄핵'의 목소리가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팽배해지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즉 처음부터 탄핵을 외쳤으며 단지 탄핵여론이 시위가 고조되면서 같이 거세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찌됐건 광우병 논란과 이 시위의 여파로 출범 초 50%대였던 이명박의 지지율은 2008년 6월에 17%까지 떨어졌으며[[https://m.segye.com/view/20080824001675|#]] 분기별 조사상으로도 21%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최저 지지율 기록은 2013년 2월 24일 퇴임까지 깨지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